코리아노마더

N번방 사건과 <모노노케 히메> 본문

Review/Movie

N번방 사건과 <모노노케 히메>

s.uuhan 2020. 4. 22. 20:55

N번방 사건을 보고,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쓴 긴 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다.

영화는 <모노노케 히메, 1997>

 


 

 

01. 팔려나온 여자들과 버림받은 나병 환자들이 자신들의 필요를 찾으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모노노케 히메>의 에보시가 건설한 타타라 마을. 에보시는 약자가 강자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인간 해방을 꿈꾼다. 타타라 마을을 둘러싼 드높은 벽, 정해진 시간 정해진 역할이 있는 마을의 노동 시스템, 총과 포 그리고 화약의 효율적인 활용 등. 모두 “계몽된 인간 에보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02. 그러나 에보시는 나병 환자들과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돌보면서도,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인간의 부품화에는 선뜻 동조한다. 그녀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소몰이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여기며, 사슴신과 숲의 신수들을 “왕이 약속한 거래의 목표”로 치부한다.

 


 

03. 삶과 죽음, 강자와 약자, 남자와 여자, 빛과 어둠 등의 대립으로 나누는 이원 구조는 그 자체가 계몽을 위한 하나의 “허상”이다. 이러한 허상은 오히려 자연이 아니라 문명 안에 (가방끈이 길어질수록 ㅡ경계하지 않는다면ㅡ 허상 속에 갇히기 더 쉬워지는 이유) 위치한다. 계몽을 통해 강자와 약자와의 관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끊는다고 했지만, 오히려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시스템은 ‘보편’을 만들어내고, 그 보편에 해당되지 않는 자들은 공동체에서 배척받는 ‘주변인’이 되어버린다. 

 

 

04. 나 아니면 너. 세상을 이분화 하고, 나를 보전하기 위해 너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인간은 결국 “전투기계”가 되어버린다. 타자의 특질을 인정하지 않는 “계몽”은 아이러니하게도, 애초에 피하고자한 “대학살”을 만들어낸다.

 


 

05. 그런 의미에서 모노노케 히메의 페미니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작품보다 훨씬 진일보한 에코 페미니즘을 보여준다. 이성이 자연에 대해 지니던 시각, 타자를 생성하던 일자의 시각을 뜯어 고치고, 그럼으로써 문명 안에 존재하는 ‘주변인’을 구제하려 한다.

 

 

06. 작품 중간까지 에보시는 주변인 전체가 아닌, ‘백인 여성’만을 구제하려는 전통적 페미니즘에 가까웠다. 허나 영화 내내 서로 물고 뜯었던 에보시와 산 이 두명이 합일되는 지점에 에코 페미니즘은 탄생한다. 데다라 신이 죽은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걸 에보시는 보았고, 그녀는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더 좋은 마을을 세우자”고.

 

07. 하야오가 에보시의 목소리를 빌려 당대 일본 사회에, 나아가 앞으로의 인간 세상에 전하고픈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 N번방 사건으로 들끓는 분노 속에, 부디 우리 사회가 에보시와 같이 행동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분 인용 : https://m.blog.naver.com/a_lord/221016944066

Comments